
5895m 킬리만자로 정상을 오르며, 마랑구 트레킹 여행 비용, 탄자니아 여행 예약 방법까지 후기를 남겨보았습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여행은 저의 오랜 버킷리스트였는데요. 많은 분들이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글의 순서
- 1. 탄자니아 여행 사전 준비 사항, 준비물
- 2. 탄자니아 여행 킬리만자로 트래킹 비용
- 3. 탄자니아 여행 첫 날, 트레킹 준비
- 4. 탄자니아 여행 킬리만자로 트레킹 시작
- 5. 12/25 수요일 크리스마스, 기적이 일어나다
- 6. 마침내 킬리만자로 트레킹의 끝, 5895m 정상에 올랐습니다.
1. 탄자니아 여행 사전 준비 사항, 준비물
오랜 꿈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산 정상에 올라 제 눈으로 빙하를 보는 일- 눈이 조금씩 녹아 3년 안에는 만년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5895m 킬리만자로 산을 오르는 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12월 말 저는 남자친구와 아프리카 탄자니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저의 남자친구는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겠다며 동행을 약속해주었습니다. (참고로, 탄자니아 여행 안전이 중요하오니, 탄자니아 치안 상, 여자 혼자 다녀오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12월 26일이 우리의 기념일이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될거라 생각했습니다.
탄자니아 여행 트레킹을 위해서 심장 강화 훈련을 받았습니다.

1.등산 용품 준비물
등산이 취미인 사람도 아니었기에, 등산 용품들을 구하는게 가장 시급했습니다.
엄마의 등산복부터 남동생의 작아진 패딩까지 이것저것 전부 모아 킬리만자로 등산을 준비했습니다. 첫 이틀은 햇빛이 강렬하니 챙이 큰 모자를 꼭 챙겨야 합니다. 탄자니아 기후를 보면, 마지막 이틀은 -20도에서 -30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오른쪽 사진처럼 가릴 수 있는 모든 부분을 최대한 가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했습니다.
옷에 부착할 수 있는 손난로도 필수라하여 30개를 준비해갔습니다.
2. 황열병 예방 접종
탄자니아 입국을 위해서 입국 10일 전 황열병 예방접종은 필수입니다. 대학병원이 더 빠르게 예약이 가능하다하여 우리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황열병 예방접종을 맞았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주신 처방전을 통해 고산병약을 비롯하여 킬리만자로 산행에 필요한 약들도 모두 처방받았습니다.
3. 탄자니아 입국 비자
탄자니아 입국 비자는 공항에서 바로 발급이 가능하며 비자 비용은 50불입니다.
2. 탄자니아 여행 킬리만자로 트래킹 비용
킬리만자로산 인 아웃행 항공까지 포함하여 400만원 정도 비용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인 업체와 현지 업체가 있으나 모두 메일로 컨텍해본 결과, 경험이 더 많은 Monkey Adventure라는 외국 업체를 통해 다녀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참고로 탄자니아 패키지 여행으로도 데이트립을 다녀올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당 3명의 포터(짐을 들어주는 사람)와 가이드 2명, 요리사 1명을 고용하였습니다.
3. 탄자니아 여행 첫 날, 트레킹 준비

제 상체보다 더 큰 12kg의 짐을 들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저희가 탄자니아 여행 시, 이용한 항공은 에티오피아 항공이었습니다. 인천에서 킬리만자로산이 있는 탄자니아까진 에티오피아 항공을 타고 대략 18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12월 22일 오후 2시, 우리는 탄자니아에 도착했습니다.
저희는 여정 첫 날 부터 좋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스웨덴 친구들이었는데, 이들은 킬리만자로 원데이투어를 계획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등산 마니아도 아닌 우리가 6일 동안 킬리만자로 산을 오른다고 하니 꽤 놀란 눈치였습니다.
공항 앞에서 우리 이름을 들고 있는 가이드를 만나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탄자니아에 도착한 첫 날부터 비가 많이 왔습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산행이 걱정되었지만 어두운 하늘을 돌보는 구름이 내려와 다 잘 될거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 마침내 우리는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가장 먼저 한일은 우리의 모든 짐을 풀어 다시 재정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참고로, 탄자니아 여행 킬리만자로 트레킹 산행 첫 이틀 간은 가볍게 반팔로 시작하지만 점차 고도가 높아질수록 온도가 급격히 내려갈 예정이므로, 저희는 사계절의 옷을 모두 챙겨야만 했습니다.
그 다음 가이드를 만나, 저희가 한국에서가져온 짐을 모두 검사받았고 부족한 짐은 그 다음 날, 장비대여점에서 빌리기로 하였습니다.

탄자니아 로컬맥주인 세렝게티 맥주와 함께 밥이 있는 탄자니아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한식을 가장 사랑하는 저는,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김치와 돌자반부터 꺼내기 바빴습니다. 긴 비행에 지쳤던 탓인지 저녁 먹고 돌아와 저녁 7시반부터 잠이 들었습니다.
4. 탄자니아 여행 킬리만자로 트레킹 시작
12/22 일요일 킬리만자로 산행 (2720m Mandara Hut)
드디어 산행 첫 날 입니다.
아침 8시 반, 저희는 킬리만자로 트레킹 산행을 함께할 가이드와 포터와 요리사를 만났습니다. 그 다음, 장비대여전문점에 가서 폴대와 침낭을 빌리고, 킬리만자로 마랑구 게이트로 이동했습니다. 이동 시간은 약 1시간이 걸렸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 그런지, 킬리만자로 등산을 위한 리셉션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었습니다.
리셉션에 저희 정보를 등록하고보니, 제가 2019년 기준, 한국인 여자 최연소로 킬리만자로 트래킹을 신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킬리만자로산 정상에 성공적으로 오른다면, 기분 좋은 타이틀을 얻고 25살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첫 날부터 의지가 대단했습니다.

탄자니아 여행 가이드가 챙겨주는 런치박스를 가볍게 먹고 산행을 준비했습니다.
산행 첫 날부터 비가 많이 내려 우리는 판초를 입고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탄자니아 여행에서는 항상 비가 올 때를 준비하여 판초를 챙겨야 합니다.
산행을 시작한 이후로는 휴대폰이 터지지 않아 가끔 사진을 찍을 때 외에는 가방에 넣어두었습니다. 지금부터 써 내려가는 저의 일기는 산행을 마치고, 자기 직전에 침낭에서 남긴 메모들을 옮겨적은 기록입니다. 사실상 이 기록들은, 매일 제가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하며, 당시 느꼈던 감정의 나열에 가깝습니다. 저희의 여정을 전체적으로 담은 영상도 글 하단에 같이 남겨보겠습니다.
12월 22일 밤, Mandara Hut 첫 산장 도착

첫 날 산행은 2720m까지 진행되었습니다.
5시 쯤 도착한 우리는 Mandara Hut이라는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산장은 4인실로, 네 개의 매트리스가 준비되어 있었으나 이 날은 여유롭게 둘이서만 이 Hut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 우리 두 사람에게 허락된 물은 보이는 사진이 전부였습니다.
간단한 세수와 양치 외에는 머리를 감을수도, 샤워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킬리만자로 트레킹 산행 중 화장을 하는 것이 무리란걸 미리 파악했던 저는 기초화장품과 썬크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준비된 저녁을 먹고 바로 잠이 들어서 그런지, 새벽 4시 반이 되어 깼습니다.
새벽에 남자친구 손을 잡고 산장을 나왔더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을 빼곡히 수놓은 별들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사용했던 아이폰 11프로를 가지고, 열심히 탄자니아의 하늘을 담아보려했으나 먼지처럼 찍힌 사진에 토라지고 말았습니다. 대신 두 눈 가득 별을 담기로 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별을 같이 본다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수많은 별들 사이 우리는 손을 잡고 나란히 산장 주변을 걸었습니다.
새벽 4시 50분, 모두가 잠든 사이, 지금 이 세상에 남은 건 우리 둘과 초승달, 그리고 무수히 많은 별들이었습니다. 적재의 별 따러 가자 노래를 틀고, 우린 하늘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습니다다. 함께 볼 수 있음에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12월 23일 월요일 킬리만자로 산행 (3720M Horombo Hut)

세상에 많은 감사함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 걸을 수 있는 감사함
- 이 아름다움을 눈으로 마음껏 담을 수 있는 감사함
- 숨을 쉴 수 있는 감사함
-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감사함
- 누울 자리가 있다는 감사함
-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함께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감사함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절대 당연할 수 없는 감사한 순간들 이었습니다
Hello How are you?
I’m good. Because I see you.
산행 도중에 늘 짧지만 따뜻한 영어로 반겨준 이들이 있었습니다.
매일 긴 산행 시간이 반복되는 동안, 우리는 그들로부터 간단한 탄자니아어를 배우기도,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함께 캐롤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탄자니아 여행 중, 매일 달라지는 새로운 자연에 감탄하는 우리에게, 가이드는, 높은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들을 소개해주며, 자연과의 사진을 남겨주기도 했습니다.
왜 산에 오르나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르는 것이지요.
우리는 산장에서 매번 새로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네팔에서 하이킹 여행사를 운영하는 대표님을 만나기도, 매번 새로운 세계여행을 준비하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값진 인연이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무사히 산행을 마쳤습니다.
12/24 화요일 킬리만자로 산행 (4720m Kibo Hut)

12월 24일 KIBO 산장 도착
꾸역꾸역 우린 4720m까지 올라왔습니다. 사실은 고산적응기 하루를 가지고 산에 오르는 것을 계획했지만, 자심감이 넘쳤던 우리는 고산적응기 없이 바로 정상에 올라도 괜찮을 것 같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고산병에 대해 잘 몰랐던 우리의 아쉬운 선택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꼭 하루 정도 고산 적응기를 가지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 날 저녁, 남자친구가 많이 아팠습니다.
고산병과 편두통이 함께 와서 그런지 둘째날부터 먹기만 하면 토해냈고.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어려워 복통도 함께 있는 듯 하였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옆에서 거친 숨소리로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한 채 어렵게 잠이 든 그를 보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그의 매트리스에 살짝 걸터앉아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 밖에는. 인터넷도 터지지 않아, 그 어떤 해결책도 검색해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는 괴로움에 그를 보면 눈물이 먼저, 나왔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의 등을 두들겨주고, 물과 휴지를 주고 약을 꺼내주는 것 밖엔
약 먹을래?
이 말을 꺼내는 것 조차 두 사람 모두에게 부담이 되었습니다. 약으로도 통하지 않는 아픔이란걸 너무 잘 알기에- 그 말을 구태여 꺼낼 때마다 미안함이 더 앞을 가렸습니다.
이제 좀 어때요?
잦은 간격으로 그에게 물어보지만, 그의 ‘조금 아프다’는 말을 나는 곧이 곧대로 들을 수 없었습니다. 저를 안심시키기 위한 조금이, 사실은 아주 아플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그의 손을 잡고 떨어지는 눈물이 그의 손등까지는 흐르지 않도록 막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처음 오르는 킬리만자로 트레킹은 역시나 쉽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힘들다는 말로 모든 감정을 이내 표현하기 어려울만큼-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단순히 정신적으로 힘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육체적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아가처럼 곤히 잠들었다가도 한시간이 안되어 다시 거친 숨소리로 일어나기를 반복했습니다.
딱 하루만 더 올라가면 5895m,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정상이었지만, 4760m의 산장에서 그는 더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정대로라면 킬리만자로 트레킹의 마지막 산행은 이 날 밤 11시에 출발하여 6시간 후 크리스마스 새벽에, 정상에서 일출을 보는 일정이었습니다. 그에게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를 선물해주고 싶어서 잡은 일정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산행을 위해, 크리스마스 이븟 날, 밤 10시부터 산장은 분주한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오직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아픈이들만을 제외한 채. 고산병을 포함해 여러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만 산장에 남고 모두들 -20도의 마지막 산행을 위해 온 몸을 꽁꽁 싸매기 바빴습니다.
아픈이들만 님은 이곳은 마치 중환자실 같았습니다. 우리도 그 들 중 한명이었고, 혹여나 그런 분위기마저 그를 더 힘들게 할까봐 그의 눈과 귀를 가린채 가만히 안아주기를 반복했습니다. 아픈이를 홀로 둔채, 같이 일정을 시작한 부부도, 그룹들도 환자는 남겨두고 산장을 떠났습니다.
그도 내게 혼자라도 무사히 정상에 다녀오라며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꾹 참았던 눈물이 터지며 내 얼굴을 타고 그의 귓가로 들어가던 순간이었습니다.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겠지요. 저의 목표가 ‘단순히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르는 일’만은 아니라는 걸. 제 옆에 있는 이와 건강하게 무사히 정상에 오르는 것이 저의 목표였다는 걸. 그러니 저는 그보다 조금 몸이 더 괜찮다는 이유로 혼자 갈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포기가 아름답다는걸 압니다.
우리는 열심히 걷고 걸어, 살면서 처음으로 4000m가 넘는, 4760m의 Kibo 산장 까지 왔습니다. 이건 대단한 일입니다. 충분히 잘 한 일이고요. 제 옆에서 아픔을 잘 견뎌준 사랑하는 이의 모습만으로도 저는 정상에 오르는 그 이상의 행복을 이미 느꼈습니다.
우린 아직 젊고, 앞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제대로 준비하여, 그 때 또 다시 손을 잡고 산에 오르면 된다고. 살면서 가장 풍성한 마음을 가졌던 4일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칭찬을 누군가에게 해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자랑스럽다고, 고맙다고, 너무 잘하고 있다고. 힘들면 참지 말라고, 아픈건 당연하다고.
곧 새벽 4시 반입니다.
아침이 밝으면 우리는 어제 출발했던 3760m의 산장까지 내려가 앰뷸런스를 타고 처음 시작했던 게이트로 이동할 것입니다.
5. 12/25 수요일 크리스마스, 기적이 일어나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날 아침, 그는 아픈 몸을 이겨내고 일어났습니다.
끝까지 정상에 오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힘들면 내려올 수 있으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새벽 6시 반, 우리는 정상을 향한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다른이들보다 7시간 늦게 출발했지만 우리의 우리 pace대로 도전을 이어나갔다. 다만 음식을 먹으면 더 고산병이 심해질까봐 빈 속으로 산행을 이어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분주하게 준비해서 나가느라 우리는 썬크림을 얼굴에 바르는 것도 깜빡했는데, 아주 큰 실수였다.
4700m부터 시작된 여정- 이미 시작점부터 높은 지대였기에 우리는 오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고산병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머리가 아팠고 소화도 잘 안되며, 피가 머리로 쏠려왔습니다. 살면서 1000m의 산도 오른 적이 없던 사람이 6000m를 오르려니 그럴 수 밖에-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습니다.
4200m 부터 식물 하나 보이지 않았으니 얼마나 산소가 부족한 곳인지 여러분도 느껴지실 겁니다. 더군다나 마지막 날은 눈보라가 꽤 일었습니다. 아무리 숨을 쉬어도 더이상 숨 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5초마다 한번씩 숨을 내뱉는 연습을 했습니다. 오로지 우리는 숨을 쉬고 고도를 적응하는 데에만 온 힘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그저 내 두 발은 기계처럼 저절로 걷게 할뿐-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감사한 일이라니,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감사함이었습니다.

‘포기할까? 이제 그만 내려갈까? 이 상태로 더 오르다가는 진짜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아.’
살면서 가장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습니다. 포기를 얼마나 외쳤는지 모르겠습니다. 몇 번을 이제 그만 내려가겠다며 이를 악물고 울었지만, 또 그 울부짖음 뒤에는 강하게 내려가지 못하고 꿋꿋이 올라가는 내 두 다리가 있었습니다.
가이드는 이제 곧 도착할거라며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위로했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 했습니다. 무서움이 눈 앞을 가려, 그렇게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참자. 정상 올라가면 우리 같이 울자. 너무 수고했으니깐, 정상에 가면 마음껏 울자.”
약해지려는 순간마다, 그가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위로해주었습니다. 어제 그렇게 아프던 그는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든든하게, 저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6. 마침내 킬리만자로 트레킹의 끝, 5895m 정상에 올랐습니다.
5895m 킬리만자로 트레킹 정상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쓰러져서 펑펑을 울었습니다. 세상이 떠나가듯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그도 그랬습니다. 내 옆에 누워 닭똥같은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눈물을 흘려주는 이였습니다. 전 날, 그렇게 아팠음에도 내가 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묵묵히 함께 이 길을 가주어, 우리의 도전을 완성시킨 이였습니다.
나는 당신이 없었다면 이 꿈을 절대로 이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옆에서 묵묵히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는, 높은 정상 위에서 산소가 되어 준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그 높은 킬리만자로의 정상에서 마지막 함박 웃음을 짓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이드는 누워서 서로 안고 펑펑 우는 우리의 모습을 6분의 영상으로 남겨주었습니다. 그 영상에서 가이드가 탄자니아어로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True love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극한 여정이 우리의 진심을 증명하는 듯 했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킬리만자로 트래킹 증명서도 받았습니다. 보기만해도 벅차오르는 증명서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탄자니아 여행 킬리만자로 트레킹은 끝이 났습니다.
다음 아프리카 여행, 탄자니아 여정 이야기는
탄자니아 타랑게티 사파리 투어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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